영화 <듄>은 SF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명작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소설로서도 그렇지만 이번에 영화로 만들어진 <듄> 또한 원작 소설을 읽어보거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역대급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듄>에 대해 알지 못한 관객들 사이에서는 혹평도 많은데 이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 <듄>에 대해 나의 생각을 말해보고자 한다.
방대한 SF 대서사의 시작, 듄.
영화 <듄>은 SF소설을 원작으로 한 방대한 스케일의 SF영화다. <듄>의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에서 시작된다. 10191년 제국의 황제는 여러 대가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시기하기 시작한다. 레토 공작은 황제가 질투를 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그런 레토 공작이 눈에 거슬렸던 황제는 하나의 계략을 쓴다.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행성인 <아라키스> 지배와 관리의 의무를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준 것이다. 이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행성은 맡긴 거면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좋은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래 <아라키스>를 지배하고 있던 또 하나의 대가문 하코넨이 느끼게 될 박탈감 때문이다. 하코넨은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힘을 지닌 가문이었는데, <아라키스>를 넘겨야 한다는 건 하코넨에게는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다. 한편 황제는 <아트레이데스>와 하코넨을 싸우게 만들어 두 가문이 서로 큰 피해를 받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무너트리기 위해선 하코넨의 힘이 필요했기에 하코넨과 황제 사이엔 약간의 교감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맡게 될 <아라키스>는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행성이지만 영원히 사막 행성으로 남을 운명이었다. <아라키스>는 테라포밍으로 연구를 통해 비옥한 행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지만 스파이스 때문에 좌절된 것이다. 스파이스는 행성의 모래벌레들이 만들어내는 것인데 이 스파이스라는 물질은 생명을 연장시키고, 특별한 능력을 갖게 해주는 특별한 물질이었기 때문에 그걸 만들어 내는 모래벌레들이 살아있을 수 있도록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선 사막을 없앨 수가 없었다. 또한 스파이스가 나오기 때문에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는 절대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듄 세계관의 주인공이자 선택받은 자, 폴.
주인공 폴은 그 성장과정부터 보통 사람이 아니다. 일단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레토 공작의 아들이며, 선택받은 자이다. 듄 세계관에는 <베네 게세리트>라는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일종의 종교집단이다. <버틀레리안 지하드>라는 지성체들의 집단 이후로 우주를 감시하는 하나의 세력이다. 이들은 전원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주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자신의 신체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능력이나 영화 속에서 표현되는 예지력과 목소리가 대표적이다. <베네 게세리트>는 목소리를 이용해 사람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 그리고 <베네 게세리트>는 자녀의 성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데 문제는 폴의 어머니인 레이디 제시카가 폴을 아들로 결정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된다. 원래 <베네 게세리트>는 수백 년간 준비한 <퀴사츠 헤더락>이라는 계획이 있는데 그 계획은 정확히 90세대가 거쳐 태어난 자손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계획이었고, 레이디 제시카의 자식이 그 자손이 되는 해였는데 아들로 선택하며 변수가 생긴 것이다. 이후 폴은 <베네 게세리트>로부터 시험을 받게 되는데 <베네 게세리트>는 이 시험을 통해 폴이 너무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폴은 점차 <퀴사츠 헤더락>으로서의 자질을 발현하게 된다. 바로 시공을 연결하고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보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레토 공작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약속의 행성 <아라키스>로 이동하게 되고, 그곳에서 예정대로 <아라키스> 행성의 지배권을 이양받는다. <아트레이데스> 가문 사람들은 아라키스 행성의 사람들과 융화될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던 하코넨은 준비한 기습을 실행하며 <아트레이데스> 가문에게 큰 피해를 준다. 황제의 도움까지 받은 하코넨은 순식간에 <아트레이데스> 가문을 몰락시키고, 레토 공작까지 인질로 삼게 된다. 이 상황에 다행히 가신들의 도움과 목소리의 도움을 받은 폴과 제시카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사막을 헤매게 된다. 그리고 폴은 자신의 운명을 깨달으며 하코넨과 황제에게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 그렇지만 2편이 기다려지는 영화 <듄>.
<듄>은 대체적으로 많은 분들이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많다. 그중에는 지루하다는 평도 재미없다는 평도 제법 있다. 내가 보기엔 이 작품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존재한다. 바로 영화가 한편으로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 감독 드니 빌뇌브가 선택한 방식과 이야기의 단순함 때문이다. 프랭크 허버트의 소설 <듄>은 정말 위대한 작품이고, 대단한 소설이지만 그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왜냐하면 이와 비슷한 스토리를 우리는 살아오는 동안 많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듄>이라는 소설이 후대의 영화나 소설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고, 아주 많은 SF와 판타지 작품들이 이 작품을 참고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이미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후대의 작품들의 뿌리가 되는 <듄>이 상대적으로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듄>이 드라마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듄>의 서사시를 영화에 담기에는 그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고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어마어마한 배우들이 출연하고, 마치 폴이 환생한 것 같은 티모시 샬라메를 내세웠지만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이게 끝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제 긴 프롤로그가 끝나고 본편을 기대하고 있는데 영화가 엔딩을 향해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폴의 영웅적인 모습들은 본격적으로 2편에서 등장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음 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한 편의 영화로서는 완결되지 않은 것이고, 그것은 관객들에게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듄>은 지나치게 비기닝에 가까운 영화로 만들어졌고, 그래서 관객들은 갈증과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이다. 또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특유의 연출 방식도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 중 하나이다. 나는 드니 빌뇌브가 대단한 감독이라고 생각하지만 웅장한 연출과 장엄한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설명을 생략하는 방식은 자칫 지루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찌 보면 이런 연출 방식이 하나의 스타일이고 훌륭한 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루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드니 빌뇌브의 연출에는 장점도 분명 존재한다. 이 영화가 지닌 시각적인 매력은 거의 마법에 가깝다. 관객들로 하여금 숨 막히게 만들 정도로 비주얼이 훌륭했다. 또한 영화로 표현된 여러 설정들이며, 비전을 보듯 미래를 바라보는 폴의 시선도 잘 표현됐다는 게 느껴진다. 몇몇 장면들은 너무 멋지고 황홀해서 다시 보고 싶게 만들 정도로 아름다웠다. 또한 비주얼과 사운드가 동시에 예술적으로 표현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이 뛰어난 작품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영화 속 사막만이 주는 특유의 황량한 분위기와 색감이 귀를 울리고, 가슴을 치는 음악의 웅장함이 영화관을 가득 매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로망이 여전히 <듄>에는 있다. <듄>이 게임과 영화, 드라마로 계속 회자가 되는 이유는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로망 때문이다. 선택받은 폴이라는 청년이 몰락한 가문을 다시 세우고, 복수하기 위해 사막의 거친 세계 속에 발을 들이고, 그걸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가 특유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