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정우가 터널에 갇히게 되며 그 안에서 힘겹게 생존해내는 재난영화일 거라고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영화 <터널>은 사건과 관련 있거나 관심 있어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풍자한 영화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땐 영화 속에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사건 처리와 행동이 그저 답답하게 느껴졌는데 두 번째 영화를 볼 땐 그들의 모습에 소름이 끼치고,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영화에 잘 표현한 작품이 <터널>이라고 생각한다.
터널 속에 고립되어버린 한 남자의 생존 이야기.
영화 <터널>은 평범한 직장인인 정수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작스럽게 터널 안에 갇히게 되고, 살아서 나가기 위해 생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이 이야기만 들었을 땐 전형적인 재난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재난영화라기보다는 재난이 벌어진 상황을 통해 재난에 연관되어 이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를 풍자한 영화다. 자신들의 특종을 위해서 한 남자의 불행을 기도하는 기자들과 이런 불행을 기회 삼아 형식적인 언론 노출로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는 관련자들 그리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까지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이 저마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속에서 높은 권력을 가진 분들이 나와 터널이 붕괴된 사건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는데 그 장면들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다행히 영화 <터널>에서는 주인공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며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나지만 영화 <터널>의 원작 소설에서는 영화보다 더 현실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원작 소설.
영화 <터널>의 원작 소설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차갑고 잔혹한 결말을 보여준다. 첫 실패로 끝난 구조작전과 구조작전중 발생한 사망사고로 정수를 구하려고 노력하던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고, 오히려 터널에 갇혀있는 정수와 정수를 포기하지 못하고 끝까지 구조하길 원하는 그의 아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희생이 생긴다며 모든 비난이 정수의 아내에게 향한다. 그리고 정수가 죽었을 거라고 말하는 여론이 과반수를 넘게 되며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자들이 정수의 아내에게 다른 터널의 공사를 다시 진행하는데 동의한다는 동의서에 서명하기를 압박하고 강요한다. 결국 정수의 아내는 구조 중단 결정에 동의하게 되고, 외롭고 차가운 땅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던 정수는 라디오를 통해 그녀의 아내가 내린 결정을 듣게 된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린 정수는 절망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사고가 일어난 지 32일째 정수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을 확인한 전문가들은 뒤늦게 그가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터널 붕괴사고와 관련되어 있던 관련자들과 구조작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실을 숨기고 태도를 바꾼다. 그로 인해 정수의 아내는 남편 정수를 구하지 않고 포기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며 사람들에게 오히려 비난의 화살을 받게 되고, 정수를 잃었다는 슬픔과 말도 안 되는 비난들은 그녀와 그녀의 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 결국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온 가족이 희망을 잃게 되는 슬프고 처참한 결말을 소설에서는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을 보여주기보단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시선을 보여준 영화.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물론 영화는 무거운 내용 속에서도 웃음을 주는 다양한 장면들과 가벼운 풍자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볼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 영화를 접할 땐 단순히 배우 하정우가 터널에 갇히게 되는 사고가 일어나며 그 안에서 힘겹게 생존해 내는 영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서 정수의 생존에 시선을 두는 것이 아닌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에게 시선을 고정시켜 보았다. 사건에 관심을 갖고 특종을 바라는 기자들, 붕괴사고와 관련되어 손해를 보고 있는 관련자들, 사고에는 관심 없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영화가 재난상황을 통해 생존하는 희망적인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지만 다른 등장인물들의 사회적인 혹은 개인적인 욕심과 무관심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며 참 답답하다는 생각도 했고, 항상 저 사람들은 일처리가 저렇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어쩌면 내가 저런 재난상황을 겪게 된다면 내 생각에도 내 주변에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쩌면 정말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런 문제들을 풍자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